[090528] 휴가 복귀일. 단상

-09年 05月 28日 정체성의 혼란 


 대체 언제부터 내 주 관심사가 게임과 애니메이션 혹은 만화에서 축구로 전이되었는지 모르겠다. 어째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아직도 내가 '축구를 좋아한다'고 말할때마다 어색하고 '축구를 좋아하는 나'라는 모습이 내게 있어서 과연 '정체성'을 운운할 만큼 올바른 모습인지도 모르겠다. 요컨대 자신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달리 내가 타인에게 내세울만한 자아랍시고 가지고 있는 모습이 이렇게 축구를 좋아하는 축덕후의 모습이니 그건 그렇다 치자.

 하지만 이렇게 시간이 갈수록 나에게 몰려오는 허망함은 어떻게 설명해야할까? 나는 때론 축구따위 전부 없어져버려라 나도 대세에 편승해서 야구나 좋아해버릴까보다~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정말 축구라는 스포츠는 아무짝에도 쓰잘데기 없어 보이며, 내가 그걸 좋아한다고 누군가에게 알려줬을때 별로 긍정적인 시선이 돌아올것이란 기대를 할 수 없게 만든다. 마치 내가, 중년층이 너나할것 없이 골프를 치고, 그런 사람들이 보는 골프 전문 방송 채널이 있는 것을 보면서도 골프란 참으로 시덥잖은 운동이라고 생각하듯이 -우리 부대 도서관에 꽂혀있는 '위대한 게임' 이라는 소설이 골프를 다루는 내용이라는 것을 알면서 콧물이 나올정도로 코웃음을 쳤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세간에 출판되어있는 수많은 골프 관련 서적, 특히 만화는 내가 아는 골프만화가 적어도 5개는 된다는 점을 생각해봤을때 이 골프라는 스포츠의 인프라나 팬층을 얕보면 안될 것 같다- , 나를 상대하는 사람들도 축구를 그렇게 생각할거라고 생각하면 어딘가 부끄럽다. 축구에 가벼운 흥미를 느끼고 호의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와 축구에 뭔가 강박증을 가지고 있는 일명 축덕후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부터는 나는 누군가에게 '나는 축구를 좋아한다'라고 말하기가 몹시 껄끄러워졌다. 나는 후자인데, 전자인척 할 수 없는 후자의 케이스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맨유와 리버풀이 경기를 했고 리버풀이 올드 트래포드에서 4:1로 승리했다고 했을때 그냥 평범한 대한민국 청년처럼 "그런데 박지성은 잘했나? 골은 누가누가 넣었나? 오 역시 토레스는 빠르군" 이라고만 반응할 수 없는 내 자신을 이해할 수 없다. '웬 듣보잡이 쐐기골을 넣었네?' 라고 누가 말했을때 그 환상적인 (내딴엔 굴욕적인) 쐐기골을 넣은 선수가 안드레아 도세나 라는 이름의 풀백이며, 평소에 주전대접도 제대로 못받는 얼간이 잉여인력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하다. 남들이 모르는 정보를 알고 있을때 그것을 뽐내고 싶은 심리는 누구에게나 있기 마련이지만 그게 축구에 관계되면 손 쓸 도리가 없을 정도로 찌질해보인다는 점을 알고 있나? 예를 들어, 어떤 선수가 어디에서 뛰다가 어디로 이적했는데 언제 부상을 당해서 얼만큼 재활을 하다가 이번에 복귀했는데 또 부상을 당해서 팬들이 그에게 유리 트로피를 선물해주었대~ 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설명해주면 그 사람들은 그걸 듣고 "헐 넌 대체 뭔데 그런걸 줄줄 외우고다니셈 좀 짱인듯ㅋ" 하고 신기해한다. 그러면 나는 그 신기해하는 반응에 내심 우쭐해진다. 그러나 남는것은 허망함이다. 그런건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것이다. 그걸 스스로 자각하고 있지만, 나는 언제나 그런것을 줄줄 외우고 다니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이게 대체 뭐하는 짓거리지? 라며 내심 절망하면서도 눈과 손을 도저히 뗄 수 없는 것이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내게 어릴적부터 숨어있었던 호사가의 기질이 축구라는 매개체 안에서 폭발한게 아닌가 싶다. 나는 언제나 누군가를 객관적인 입장에서 평하기를 좋아했었으니까. 만화를 보며, '유유백서에서 누가 제일 셀까?' 라는 질문을 축구쪽에선 '공을 몰고 누가 제일 빨리 달릴 수 있을까?' 에서 바꿔 하는거나 마찬가지랄까. 아... 아무튼 이런 글까지 쓰게 만드는 빌어먹을놈의 스포츠가 정말 싫다. 내가 라이벌을 싫어하게 하는 이유도 뭔가 말로 설명할 수 없고 이기면 마냥 기분이 좋지만 좋아하는 팀 선수가 다치면 가슴이 먹먹한것도 뭔가 정신병같고 아무튼 마음에 드는 구석이 하나도 없는 스포츠다. 난 사실 리버풀에 내심 호감을 갖고 있다! 제라드는 훌륭한 플레이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엠블럼만 봐도 혐오감이 치솟아오르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이 설명할 수 없는 기분은 대체 뭐라 해야할지? 이미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언제나 이렇게 때려치우자고 생각하면서도 결국은 실패한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서 나는 늘 이적소식에 귀기울이고 가십거리를 찾아 헤매며 턱을 괴고 생각에 잠기곤 하는 것이다.  차라리 숨기지 말고 지금처럼 계속 드러내고 사는편이 속편할지도 모르겠지만, 나처럼 노는 사람을 내가 지켜봤을때 썩 유쾌한 기분이 들지 않는것을 보면, 타인이 나를 봤을때 역시 그럴 공산이 높다. 난 '축구팬인 나'에게서 벗어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맨유가 이겼을땐 그 다음 경기가 있을때까진 하염없이 우쭐대고 다니는 내 모습을 다시 떠올리자니 그건 힘들것같다. 그렇다면 맨유가 만일 감독이 바뀐 후에 슬럼프에 빠지면 내 삶은 어떻게 되는걸까?


by 미치엔 | 2009/05/28 08:50 | # 日記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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